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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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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정치 == 플로렌시아에서는 앙드레 뒤몽 총리가 개전 직후 전시 내각을 꾸려 전쟁을 지휘했다.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대폭 올리고 물가와 임금을 통제했으며, 1956년 이후 추진해 온 수출 산업은 성장을 멈추었다. 전쟁 막바지에는 장기전에 지친 여론이 조기 강화를 요구했지만, 뒤몽은 협상국의 결속을 이유로 전쟁을 끝까지 이끌었다. 루이나에서는 전쟁 도중인 1961년 로런스 D. 페닝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헨리 모리슨 대통령이 취임했다. 두 행정부 모두 해군 증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적국 사비에트가 공산국가였던 탓에 국내에서는 반공 분위기가 짙어졌고, 1957년 승인된 [[제방 계획]]에 따라 1958년 결성된 극우 조직 '공화국의 방패'도 이 분위기 속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사비에트에서는 [[세르게이 안토노프]] 서기장과 니키타 인터루쇼프 총리의 집단지도 체제가 전쟁을 이끌었다. 전쟁 비용에 우주 개발 비용, 청평과의 결별, 동사랜드 봉기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정치국 안에서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체르드와 라 마베라에서는 봉쇄로 인한 물자 부족이 반정부 시위로 번졌고, 고랜드 왕실은 전쟁 부담을 둘러싸고 부족 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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